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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영무 (2003-04-01 00:23:03, Hit : 8630, Vote : 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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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일보 연재 세계명장열전 33회
국방일보 2003년 4월 1일 화요일

                          

                                              여영무의 세계 名將열전〈33〉
                        

                                           칼 폰 클라우제비츠(프러시아)(상)


                            

칼 폰 클라우제비츠는 역사상 가장 많은 연구와 인용대상이 되고 있는 전쟁기술에 관한 대작, ‘전쟁론’(Vom Kriege)의 저자이다.
그의 ‘전쟁론’은 지금 미국의 대 이라크 무력공격을 지휘하는 부시 행정부의 군사지휘부
의 교과서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이 여러 전투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이 대량폭격과 속전속결 단기전 전략전술을 새로운 병력증원과 함께 장기전으로 수정한것도 클라우제비츠 전략전술의 충돌모순과 유연성의 전쟁기술이다. 이런 장기전 전환은 예상외로 이라크군의 완강한 저항과 게릴라전 전개, 그리고 사막의 모래폭풍 때문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1세기반이 지났어도 그의 ‘전쟁론’은 지금까지 현대전에서도 적합성과 정당성을 가진 대작이라는 것이 전략가들의 평가이다. 1991년 합참의장으로서 걸프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지금 이라크전에서 부시 팀의 유력 전략가인 콜린 파월 국무장관도 클라우제비츠 ‘전쟁론’을 깊이 연구했다고 한다.
전쟁론을 읽었거나 활용한 전략가들 중에에는 1815년 워터루전에서 나폴레옹군을 격파한 웰링턴 장군과 레닌, 히틀러, 마모제둥, 아이젠하워, 헨리 키신저, 카스퍼 와인버거 전국방장관등도 거론되고 있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그만큼 동서양의 많은 전략가들이 소중하게 다루는 전략전술의 고전적 교본으로 간주되고 있다.
  클라우제비츠는 전략을 무리하게 어떤 형식틀안에 축소시킬수 없다고 했다. 너무 구체적인 전략전술은 전쟁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상호마찰 때문에 실패하곤 했다고 지적한다. 전투중 우연한 호기(好機)와 예정된 전략전술 집행의 불완전성 그리고 적군의 독립된 의지가 이런 마찰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전쟁에서 지도력과 사기, 우수한 장군들의 직관력, 순간적 재치와 슬기와 같이 인간적 요소들이 전쟁결과를 좌우한다고 주장한다.
1세기 반전 프러시아 군 총참모장 폰 몰트케는 실전에서 이상 지적한 전략전술을 활용했고 지금의 미국도 이라크전에서 같은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미국은 초기 속전속결 단기전 작전계획을 이라크 군과의 첫 전투후 재빨리 수정했음을 알수 있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초기 광범한 목적을 세우고 좋은 기회 포착에 노력하되 장기전 경우 초기 전략은 그후의 작전계획과는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쉴새없이 변화하는 전투환경에 적응하라는 것이 그의  핵심적 전략이론중의 하나다.
클라우제비츠 전쟁론은 전쟁외 정치 경제 기업경영 처세술에까지 광범하게 응용되고 있다. 예컨대 잭 웰치 제너럴 이렉트릭의 전회장도 그의 전쟁론 이론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기업경영이 바로 전쟁이라면서 많은 기업인들이 클라우제비츠 전쟁이론을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어떤 기업 이론가들은 기업은 가치 창조인데 반해 전쟁은 전적으로 파괴일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기업경영과 전쟁의 유사성을 단호히 배격한다. 그러나 웰치는 전쟁도 그것이 합리적 감각과 기교로 치러질 때 정치가치의 창조라면서 전쟁이 파괴뿐이라는 발상을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정치는 기업경영과 똑 같은 방식으로 치러질 때 ‘창조적 파괴’까지 내포할수 있다고 주장한다.
클라우제비츠는 정치와 군사, 국민과의 상호작용 이론을 호기(好機)와 전쟁환경의 상충모순 개념을 결합시키면서 19세기 중반부터 현재까지 군사지도자들의 전략전술에 깊은 영향을 미쳐왔다. 그는 직접 프러시아 군대의 개혁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개혁된 군대는 마침내 나포레옹 1세를 패배시켰다. 클라우제비츠는 초기 프러시아군대의 일반참모조직을 창안했고 프러시아 군대와 그후 독일군대도 체계적 장교훈련과정과 질적 향상을 위해 이 기획편제를 그대로 따랐다.
폰 클라우제비츠는 청소년 시절부터 그의 전생애를 통해 군인 생활을 계속했다. 그는 1780년 6월 1일 프러시아 마그데부르크에서 예비역 장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2세때 아동병으로서 군대에 들어간지 1년만에 프랑스군과의 첫전투를 목격했다. 그는 1801년 최초로 창설된 베르린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클라우제비츠는 거기서 프러시아와 기타 큰 나라들의 전쟁역사는 물론이고 프레데릭대제(大帝)의 전략전술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열심히 연구했다.
그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자 다시 군대로 복귀해서 장교로 임관되었다. 클라우제비츠는 1806년 프렌즈라우 전투중 프랑스군의 포로가 되었다. 그는 1년간 프랑스군에서 포로생활 하는 동안 이시기를 전쟁개념에 관한 연구기회로 활용했다. 클라우제비츠는 그후 프러시아로 돌아와 황태자의 개인교사가 되었고 이어서 전쟁성의 주요 국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황태자에게 군사교육을 시키는 교본 삼아 특별연구서를 집필했고 후에 이것을‘전쟁의 기본원칙’이란 책자로 발간했다. 이 연구서는 공격과 방어와의 관계와 언제 공격으로부터 방어로 전환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성도 해설하고 있다<kayamt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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