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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영무 (2003-04-08 00:18:14, Hit : 8792, Vote : 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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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일보 연재 세계명장열전 34회
국방일보 2003년 4월 8일 화요일

                            

                                                   여영무의 세계 名將열전〈34〉
                          

                                                 칼 폰 클라우제비츠(프러시아)(하)

                            


클라웨제비츠는 전쟁의 미래결과에 관해서도 정확하게 예측하는 혜안을 가졌다. 그는 나포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하면 러시아군의 전진배치와 프랑스로부터 러시아까지의 엄청난 먼 거리, 그리고 러시아 겨울의 혹독한 추위 때문에 실패할 것이라고 예언했고 그의 이런 예측은 결과적으로 적중했다.
클라우제비츠는 1812년 많은 동료장교들과 같이 대 러시아공격에서 프러시아가 적국인 프랑스와 연합하는 것이 조국의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 이 연합군 참전을 거부했다. 그리고 그는 조국의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나폴레옹을 지원하지 않고 프러시아 군대를 탈출했다. 클라우제비츠는 그대신 러시아 군대에 가담해서 2년간 보병군단 참모장을 포함, 여러직책에서 복무했다.
이 때 클라우제비츠는 러시아측 협상대표로 나와 프러시아군대로 하여금 프랑스와의 연합을 탈퇴하고 프랑스와 적대해서 러시아편을 들어야 한다고 확신시켰고 그의 이런 설득은 효과를 발휘했다. 그는 프러시아가 러시아와 연합함으로써 다시 조국 군대로 복귀한다. 그는 남은 전쟁기간 나폴레옹에 대항해서 싸웠으며 1818년 소장으로 진급한후  베르린 군사대학 교장으로 발탁 임명된다.
그후 그는 10년 이상 프러시아 군대조직을 개혁하고 얼마후 ‘전쟁론’으로 발간되었던 군사철학자료들을 꼼꼼하게 기록하는데 모든 노력을 다 바쳤다. 클라우제비츠는 1830년 폴란드 혁명때 프러시아 군사감시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그는 그곳에서 콜레라에 걸려 브레스라우로 후송된후 1831년 11월 16일 5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난때 클라우제비츠는 군사이론에 대한 장문의 책 초안을 미쳐 완성하지 못했다. 그가 죽은후 1832년 미망인 마리가 남편이 남긴 수많은 저작물들을 수집하기 시작해서 5년간의 집필을 거쳐 10권의 책으로 출간했다. ‘전쟁론’을 구성하는 3권의 첫 출판물들이 가장 적합한 전쟁론으로 평가받고 있다.
클라우제비츠는 저작물에들에서 전쟁과 정치를 하나로 보는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전쟁은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정치지도자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쟁과 정치의 관계를 "전쟁은 또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행위의 연속이다"라고 단순화 했다.
클라우제비츠는 또 군사작전을 과학수준으로 향상하는 시도도 했다. 그는 전략전술 사이의 ‘충돌모순’개념을 강조했다. 그는 훌륭한 작전계획을 성공아닌 실패로 만드는 원인들은 바로 작전피로와 사소한 실수, 기회혹은 작전 행운등이며 이것들을 충돌개념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또 어떤 전략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항상 전쟁이론을 현장과 사실에 바탕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상기하고 겉으로는 쉽게 보이는 전쟁목적일지라도 불가능하진 않지만 매우 어려운 것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바로 이번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수생과정에서 이런 충돌모순 현상들이 나타났다.
클라우제비츠는 그의 전저작물을 통해 군대의 주된 임무는 결정적인 전투에서 적의 주력부대와 교전, 이를 전멸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총론적인 전략은 적군의 완전 파괴에다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클라우제비츠는 어떤 장군이 결정적인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정치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사병들과 모든 지휘관들은 대의명분에 확신을 갖고 높은 상태의 사기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았다. ‘전쟁론’에 따르면 " 강력한 감정으로 군지휘관들의 위대한 능력을 자극해야 하고 이때 지휘관의 감정이 시저와 같은 야망이건, 한니발 장군의 로마 적군에 대한 증오이던, 프레데릭 대제 마음속에 있는 영광스러운 패배의 허영심이던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론은 또 다음과 같이 설파하고 있다.
"각자는 그런 감정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제쳐라! 그리고 영광스러운 수단을 찾아내라! 그러면 운명은 당신의 젊은 이마위에 빛나는 영광의 월계관을 씌워줄 것이다. 그것은 바로 황태자의 훈장이며 후손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아로새겨 질것이다"
클라우제비츠는 평소 1-2년내 쉽게 잊혀지지 않고 오래도록 기억되는 전쟁이론서를 집필하고자 염원했다. 그가 죽은지 1세기 반이 지난 오늘 그의 이런 소망은 분명하게 이뤄졌다. 19세기 같은시기 군사전략가인 스위스 출신의 프랑스장교와 러시아 군 고위장성을 지낸  앙트완느 앙리 조미니의 전쟁이론서도 많은 독자를 끌었다. 조미니의 군사이론서는 나폴레옹 전쟁유형을 중심으로 쓰여진 것이다.
  프러시아 군대는 클라우제비츠를 군사이론의 경전격인 대작의 저자로 추앙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역시 클라우제비츠의 군사이론 주창자들이 점점 증가, 20세기들어 각국의 대부분 군장교들은 클라우제비츠 전쟁이론서를 보다 인기있는 교과서로 받아들였다.
클라우제비츠를 비평하는 전문가들은 그가 전쟁의 윤리적 측면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그는 전쟁윤리를 순수 전쟁이론의 관심사가 아니라 정치 영역의 문제로 보았다. 그의 ‘전쟁론’은 해군, 공군, 육군을 통틀어 고려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가 전쟁이론서에서 해군에 대한 언급을 않은 점은 역시 옥에 티가 아닐까 한다.<kayamt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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