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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영무 (2003-03-18 00:09:39, Hit : 8619, Vote : 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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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일보 연재 세계명장열전 31회
국방일보 2003년 3월 18일 화요일

                          

                                                 여영무의 세계名將열전 〈31〉
                              

                                                    모세 다얀(이스라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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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라크 전쟁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미국, 영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면 이 전쟁은 최단 6일에서 최장 6주내에 미국의 일방적 승리로 끝날 것이라는 것이 군사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1967년 6월 5일부터 10일까지 6일만에 끝난 이스라엘의 중동전쟁을 떠올리는 전격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개발한 미국의 다양한 최첨단무기체계와 초강력 정보력, 광대한 국력으로 보아 이런 예측은 그리 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동지역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던 이스라엘의 대 아랍 ‘6일전쟁’을 이스라엘의 일방적 승리로 끝낸 전쟁영웅은 바로 모세 다얀 장군이었다.
  ‘6일전쟁’은 다얀이 이집트·시리아·요르단 등 아랍 측의 집중적 압박에 직면해 놀라운 승리를 거둔 선제공격전이다. 선제공격 결과로 다얀은 아랍 측의 위협을 제거하고 시나이 반도, 가자지구, 골란 고원, 서안 지대등으로 영토를 크게 확장했다.
이 전쟁 승리의 수훈 공신은 전략적 사고와 의지력, 강력한 지도력을 갖춘 모세 다얀 장군이다. 전투 경험이 풍부하고 군부의 존경을 받은 다얀은 비관적 상황에서 거국내각의 국방장관으로 취임, 방위위원회 회의를 전쟁 쪽으로 유도했고, 탁월한 전략 구상과 날쌘 집행으로 이스라엘의 최단기전 승리를 이끌었다.
시원하게 벗겨진 앞 이마를 가로질러 왼쪽 눈을 가린 새까만 안대가 모세 다얀의 유명한 상표다. 그는 힘과 카리스마로 넘쳐나고 검은 안대와 청년같은 얼굴모습은 그를 언제 어디서나 쉽게 알아볼수 있겠끔 한다. 이스라엘은 건국하자말자 항상 4면초가 처럼 아랍국가들에 삥 둘러싸인 외로운 고도나 다름없었다. 다얀은 이런 풍전등화의 조국 이스라엘에 국토방위와 영토확장의 승리와 영광을 안겨줌으로써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군인겸 정치인으로 기록되고 있다.
다얀은 아랍국가들의 공격과 적대행위에 대한 이스라엘 방위와 생존의 상징이며 이스라엘 국민들은 다얀의 위대한 지도력과 탁월한 예측능력, 헌신적 용기에 항상 감사함을 잊지않고 있다. 당장은 생존 그 자체가 목표인 이스라엘은 오늘날 팔레스타인의 줄이은 자살폭탄 테러리즘에 굴복하지 않고 꿋꿋이 버티고 있는 것도 다얀 장군의 이런 충정어린 애국심과 용기, 지구력 덕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처음 게릴라 전사로 시작해서 1948년 아랍진영과의 독립전쟁때에는 야전부대 지휘관으로서 조국의 생존과 방위에 온몸을 던졌다. 다얀은 1956년 대 아랍전쟁때 참모총장으로서 1967년 6일전쟁때는 국방장관으로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다얀의 생애는 1915년 5월 20일 출생후 부터 이스라엘 독립및 생존과 불가분의 운명적 관계를 맺어왔다. 미래의 이스라엘 지도자 다얀은 공교롭게도 갈리리 바다 근방 팔레스타인의 데가냐 유태인 집단농장에서 태어난 최초의 아기였다. 당시 팔레스타인은 오토만 제국의 한 지방주였다.
다얀은 어린시절 집단농장 생활은 처음에는 터키인들, 다음에는 아랍인들의 탄압을 받는등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는 14세때 자기 고장을 방위하기 위해 유태인 민병대인 하가나에 입대했다. 그는 이 하가나에서 게릴라 훈련을 받고 처음 전투경험을 쌓았다. 다얀은 1935년 6개월간 런던을 다녀온 것을 빼고는 계속해서 정기적인 전투에 종사했다.  
1936년 다얀은 상사계급장을 달고 여러개의 영국 연대에서 복무했다. 이때 팔레스타인 감시를 맡은 영국군은 유태인 하가나 전투원들을 입대시켜 안내와 척후병으로 활용했다.
그는 항상 전투태세를 갖추는 것과 직접 연관된 것이 아닌 일상활동과 그밖의 모든 것을 몹씨 싫어했다. 다얀은 사격술과 지형을 아군에 유리하게 이용하는 전술, 전면 공격전만을 강조했다. 이 시기 그는 영국의 게릴라전 지도자 찰스 윙게이트 장군밑에서 복무하는 동안 많은 독자적 군사지식과 기술을 축적해갔다.
1939년 2차대전 발발때 영국군은 하가나 유태인 민병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나중에는 이 군사조직 마저 불법화 해버렸다. 이 군사조직이 독립운동에 가담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이때 다얀을 포함, 5-6명의 지휘관들을 체포, 5년간의 징역형에 처했다. 그러나 영국은 1941년 다얀을 석방해서  독일군과 비시정부군에 대항해서 연합군편에서 싸우게 했다.
다얀은 1941년 6월 왼쪽 눈을 잃은 중상을 입을때까지 여러곳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그가 쌍안경으로 멀리 적정을 살피고 있을 때 적진으로부터 날아온 총탄이 그의 쌍안경을 치면서 깨진 유리조각과 철제파편들이 왼쪽 눈속을 뚫고 들어가 눈언저리 윤관까지 파괴하는 중상을 입혔다.  중상으로 왼쪽눈 언저리가 함몰돼 의안을 해넣을 빼대조차 남아있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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