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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영무 (2003-03-25 00:11:53, Hit : 8556, Vote : 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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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일보 연재 세계명장열전 32회
국방일보 2003년 3월 25일 화요일

                              

                                                  여영무의 세계名將열전〈32〉
                              

                                                    모세 다얀(이스라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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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이 끝날지음 하가나 빈병대는 드디어 3만 병력으로 성장했으며 이스라엘 독립을 위한 게릴라전이 다시 시작됐다. 영국군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철수했을 때 이스라엘 민병대 하가나와 주변 아랍국가들간 전투는 치열해졌다. 아랍국가들은 하나같이 유태전투원들과 가족들을 바다에 쓸어넣어 버리겠다고 맹서했다.
  이스라엘 독립전쟁이 발발했을 때 다얀은 소령이었다. 그는 1948년 5월 18일 요르단 계곡지구 지휘관으로서 그의 출생고향 데가냐를 수적으로 압도적으로 우세한 시리아군을 물리치고 조국을 방위했다. 그는 이 승리후 제89 대대장으로 임명돼 신병모병과 장비조달등에서  자기만의 원칙을 고수했다. 군사에 관한한 아무도 그의 자신감과 주장을 꺾을 사람은 없었다. 수주일안에 그는 엄청나게 우세한 아랍전투지역을 공격, 진지 탈환을 함으로써 그는 용감성과 영감을 지닌 지도자라는 평판을 얻었다.
그해 8월 다얀은 중령으로 진급한후 군인으로서 뿐 아니라 정치가로서의 자질을 발휘했다. 그가 휴전을 위한 정치협상에 참가해서 유능한 정치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1949년 전쟁종결후 다얀은 소장으로 진급, 남부지역 군사령관에 임명되었다.
독립전쟁은 끝났어도 이사라엘은 여전히 이나라와 이스라엘 민족을 명망시키려고 작심한 아랍적들에게 포위돼 있었다. 그래서 다얀은 직업군인들로 짜여진 이스라엘 국방군을 조직하느라 동분서주했다. 1953년 다얀은 마침내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으로 영전했고 전체 이스라엘 군대는 다얀의 용감한 개성을 그대로 닮아갔다.
다얀은 고참지휘관들을 보다 젊고 공격적인 장교들로 충원했다. 그는 보병과 기갑병력을 증강하면서 지원부대 병력을 감축해나갔다. 다얀은 정예 공수부대를 창설하면서 동시에 다른 부대들도 자체적으로 정예화 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자기 부하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한몸에 받아 인기절정에 달했다. 그는 부하들에게 이스라엘은 절대 부상병들을 적 수중에 넘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고 부하장병들은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1956년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아랍국들과의 관계가 또다시 악화되었고 다얀은 이때가 잘 훈련된 이스라엘 군대를 시험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는 공식적 선전포고 없이 공수부대로 하여금 주요 산간통로를 확보케하고 이어 기계화 보병사단과 기갑부대에게 이집트 전격 공격명령을 내렸다. 다얀은 진격도중 강한 적진들과 부딪치지 않고 그대로 통과하고 결정적 전투도 일부러 피하면서 개전 8일만에 이집트군을 패퇴시켰다. 그때 이후 이스라엘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검은 안대를 두른 다얀 장군은 유태민족의 군사적 수월성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다.
다얀은 1958년 군대를 떠나 정치에 입문했다가 1967년 6일전쟁 직전 국방장관으로서 현역에 다시 복귀했다. 그때 부하들이 대부분 전투계획은 이미 완성해놓았다. 그러나 다얀은  특유의 영감을 발휘해 6월 5일 이집트에 선제공격을 감행해 비행장 항공기를 지상에서 모조리 파괴, 공군력을 일시에 무력화 시켰다. 이때 다얀 군대는 이집트 지상군을 1주일 이내에 패퇴시켰을 뿐 아니라 전략적으로 중요한 골란고원을 시리아로부터 빼앗았다.
  67년 6일전쟁때 이스라엘은 미국 지원없이 단독으로 적과 싸워야 하는 일대 존망 위기였다. 온건파는 선제공격을 하지 말아야 각국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다얀의 출현은 신선한 공기와 같았다. 그는 이집트의 병력 집결을 고려할 때 선제공격이 불가피하다고 보았고 그의 예측은 적중했다. 오늘의 조지 W 부시가 그때 다얀과 비슷한 처지에 몰린게 아닌가 한다.
  그후 정치에 복귀한 다얀은 1981년 10월 16일 텔아비브에서 66세로 세상을 떠날 때 까지
임명과 선출직으로서 여러 공직에서 활약했다. 그의 군사교육은 정식 군사학교나 훈련소에서 받은 것이 아니고 모두 키부츠와 야전전투 현장에서 익힌 생생한 실전경험이었다. 다얀의 군산훈련 전문기술과 전투현장에서의 과감한 공격성과 유연성은 오늘의 이스라엘군을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이며 강한 군대의 하나로 성장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다얀이란 이름은 조국 이스라엘을 구한 전쟁 영웅으로 세계전사에 길이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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