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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영무 (2003-04-22 00:36:57, Hit : 8650, Vote :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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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일보 연재 세계명장열전 36회
국방일보 2003년 4월 22일

                        

                                                 여영무의 세계 名將열전〈36〉
                          

                                                    토미 R 프랭크스(미국)(하)  



프랭크스는 ‘사막의 방패작전’과 ‘사막의 폭풍작전’기간 제1기갑사단 부사단장(기동전담당)을 맡게 된다. 1991-92년 그는 포트실 야전포병학교 부교장으로 부임했다. 프랭크스는 그후 군사경험을 두루 쌓은후 1994년 다시 한미연합사와 주한미군사령부 작전참모로 부임하며 이어 1995-97년 주한 제2 보병사단장을 역임했다. 그래서 그는 한국에 많은 친구들을 가지고 있다.  
그는 1997년 아트란타 중부군 소속 제3군사령관으로 승진하며 2000년 6월에는 4성장군진급과 함께 중부군 사령관으로 발탁된다. 그는 2001년 10월 아프간의 알카에다 궤멸과 탈레반정권붕괴작전에 성공한다. 프랭크스는 카타르에 중부군 야전사령부를 신설, 이번 이라크 전쟁기간 내내 그곳에서 일일 현장전투를 총 지휘했다.
  그는 평소 행사후 식사때마다 고위군장성들의 해드테이블에 않지않고 구석진 자리에 서 상사들과 머리를 맞대고 대화 하는 것을 즐긴다. 그래서 한 부관이 프랭크스에게 다가가 "사령관님 이제 해드 테이블로 옮기시죠" 했더니 "아냐 나는 이 상사들과 얘기하고 싶단 말야"라는 반응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옆에 앉은 여군장교들이 신경쓰지 않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노력도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는 한 여군장교가 나타나면 자리에서 뻘덕 일어나 재빨리 의자를 끌어와 친절하게 자리를 권하기도 한다. 그가 임관되기전 사병생활때 푸대접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언제나 아래 계급 군인들을 돌봐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된것이라고 한다.
프랭크스는 아직도 미국 남부지방 특유의 느릿한 말투에다 시골뜨기 티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언제나 부모님 은덕에 감동하곤 한다는 것이다. 그는 친구들에게 "군대조직이 나를 키워주었어,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조국에 대한 충성심, 가족관계가 가장 중요하며 어릴적 부모님 말씀들이 너무나 소중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워낙 용감하고 충실한 군인이라 ‘군인중의 군인’이란 별명을 얻었다. 프랭크스는 베트남전 이래 국방부에서 가장 야망있고 위압적이며 이념적인 장관들을 모시면서 고단한 ‘시집살이’를 했다. 면도날 같은 로버트 맥나마라 장관, 전세계를 호령하는 비전과 그런 목표를 정치 군사적으로 성취하는 방법까지 제시하는 도날드 럼스펠드 장관들이 그가 만난 상사들이다.
전쟁 수행방법에 대해서 국방부와 야전군 지휘관사이 견해차와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이번 이라크전에서도 워싱턴과 현장 야전군 지휘관들 사이 그런 갈등이 빚어졌다. 국방부책상에서 미국 군사력의 위력만을 과신하면서도 실전현장을 모르는 부류와 적탄이 비오듯 쏟아지는 실전을 지휘하면서 상부 전략전술을 조심스럽게 적용해야 하는 직업군인들은 다른 생각을 가질때가 많기 때문이다.
럼스펠드장관과 월포비츠 부장관이 전자에 속하고  프랭크스등 직업군인들이 후자에 속한다. 직업군인들은 콜린 파월 국무장관쪽으로 몰려드는데 프랭크스는 파월의 사람으로 알려졌다.
  "누구도 군인만큼 전쟁을 증오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프랭크스의 신조다. 그는 럼스팰드가 멸시하는 또 하나의 모토를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어떤 작전계획도 실전현장에서 적과 맞 부딪쳤을 때 적합한 것이 못된다"는 것이다. 클라우제비츠도 ‘전쟁론’에서 이런 작전계획과 실전 사이의 모순갈등을 지적한바 있다.
미군이 이라크 남단에서 바그다드까지 600km의 먼거리를 진격할 때 차단물이 전무한 사막전에서 이라크 민병대 게릴라전에 시달렸던 것도 이 이론을 뒷받침한다. 탁상 작전계획과 실전현장의 괴리에서 빚어진 모순갈등이었다. 보급과 병참거리가 너무 길어 미군들은 한때 하루 한끼만 먹는 고통도 견뎌야만 했다.
국방부는 야전지휘부의 현장 건의를 받아들여 12만명을 추가 증파하고 진군행렬의 측면방어도 보강하는 한편 병참문제도 신속히 해결해나갔다. 럼스펠드 장관은 공개적으로는 프랭크스를 "슬기롭고 영감어린 훌륭한 지휘관이라"고 칭찬하지만 두사람사이 긴장은 존재한다. 첨단병기와 전자전을 과신하는 럼스펠드와 보병과 재래전을 중시 하는 프랭크스 사이의 작전방법상의 견해차이 때문이다.
전략가들은 기업체 회장(會長) 스타일의 부시 대통령이 프랭크스 말에 귀 기울이고 전폭적 신뢰감을 표시하면서도 양측주장을 슬기롭게 조화함으로써 이라크전이 성공했다고 보고 있다. 부시 대통령―럼즈펠드―마이어스 합참의장―토미 프랭크스 중부군사령관으로 이어지는 작전지휘부가 때로는 삐걱거리면서도 작전을 성공신킨 것은 풍부한 실전경험과 지휘능력을 갖춘 프랭크스 같은 명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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