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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영무 (2003-06-16 11:54:09, Hit : 8959, Vote : 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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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전협정 50주년, 역할과 기능 준수돼야
2003년 6월 16일
                                                
                                              

                                                        휴전협정 50주년과 한반도평화
                        
                                                          -위기관리의 과거 현재 미래-
                          
                                                             呂永茂 남북전략연구소장



1.  한반도 휴전 가장 긴 역사 기록하다


올 7월 27일은 북한의 남침 6.25 전쟁이 휴전된지 반세기가 되는 날이다. 우리는 세계 역사상 비전비화(非戰非和)의 가장 긴 휴전체제 아래서 살고 있는 셈이다. 6.25전쟁은 결국 3년간 동족상잔의 비극과 민족분단의 아픔만을 남기고 38선 대신 155마일 휴전선에서 정전된  것이다. 올해는 또 한국전쟁 발발 53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한국은 그때 신생독립국으로서 나라를 방위할 만한 국방력을 갖추지 못했을뿐 아니라 설마 북한이 동족상잔을 벌일까 하고 방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1945년 남북분단과 함께 비밀리에 소련의 도움으로 꾸준히 남침무력증강을 해왔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춘 북한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38선 전전선에 걸쳐 탱크로 중무장한 대병력을 이끌고 전면적 기습남침전쟁을 감행하게 된 것이다.
  김일성은 1949년 6월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킨데 이어 한국과 대만을 극동방어선(일명 애치슨 라인)에서 제외시키자 한국을 공산화하기 위해 소련 스탈린의 승인을 받아 남침을 도발한 것이다.
유엔은 촌각을 다투어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 북한의 공격을 '평화를 파괴하는 침략행위'로 규정하고 '원상복구'를 요구하였으나 북한은 이에 불응, 탱크를 앞세우고 파죽지세로 달려 사흘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한달만에 남한의 4분의 3을 점령했다. 초전에서 북한이 철수하라는 유엔 안보리결의를 무시하자 미·영·호주 등 유엔회원국 21개국(의료 지원국 5개국 포함)이 UN군을 창립, 한국을 지원했다.
전쟁초기 한국군보다 4배가 넘는 월등한 화력과 병력을 가진 북한 인민군은 한달여만에 한국의 4분의3을 점령했으나 9월15일 한국군과 UN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패주를 거듭, 압록강까지 후퇴하였다. 이때 한국군과 유엔군이 침략군을 물리침으로써 한국의 통일이 눈앞에 닥아온 듯 한 흥분마저 감돌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0월16일 중국이 10만여명 대 병력으로 한국전에 개입하자 통일은 일순간 허공으로 날아 가버리고 오히려 3년간의 긴 전쟁의 고통은 더욱 가혹하게 닥아왔다.  중공군이 북한군을 지원하자 전세가 역전되었으며 38선 상에서 적과 아군사이 일진일퇴, 대치하다가 1953년 7월 27일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과 김일성, 팽덕회 중국지원군 사령관 사이 휴전협정이 체결된 것이다.
한국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주도아래 통일될 때 까지 전쟁을 계속할 것을 요구하면서 정전에 반대하면서 휴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한국이 서명당사국에서는 빠졌지만 법적으로나 실질적으로 한국이 휴전협정 당사국임에 틀림없다. 전쟁중 한국군이 일정한 책임지역을 맡아 적군과 전투를 벌였을뿐 아니라 휴전협정 체결후에도 반세기동안 휴전협정 준수를 위해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왔기 때문이다.
  대남공산화전략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독재자 김일성의 무모한 남침전쟁이 680여만명의 사상자(군인 230만--한국군과 유엔군 48만여명 공산군측 150-200여만명--, 민간인 450만여명)를 내고 고아 발생 370여만명, 공장(900여개), 주택(60만여동), 산업시설등 전국토를 초토화 하는등 민족의 산과 들, 도시들을 피로 물들였다. 한국을 지원하다가 전사한 미군도 3만6천940명에 달하며 부상자는 10만명을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김일성은 자신이 도발한 동족상잔으로 1천만의 이산가족을 발생시키고 8만여명의 공무원과 지도급 인사들을 납북하는등 용서받지 못할 반민족,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다.

2. 북한의 숱한 협정위반과 협정 파기행위들

  현재의 군사분계선(MDL), 남북 각 2km 구간의 비무장지대(DMZ),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은 휴전협정 체결로 생겨난 휴전체제 준수를 위한 행정 공간이다.
그후 해를 거듭할수록 남북쌍방이 병력과 군비증강을 함으로써 상당한 위반을 기록했고 특히 북한측의 노골적인 위반행위로 말미암아 일촉즉발의 전쟁재발 위험선까지 도달한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오늘 이시점까지 한반도에서 전면전의 재발없이 불안정 하나마 휴전이 그런대로 지켜진 것은 남북간의 세력균형과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협정준수 노력 덕택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휴전협정위반은 주로 북한에 의한 항공기 납치와 공중폭파, 잠수함과 간첩남파등 무력도발과 핵무기와 대량살상무기 개발등 다양한 형태로 자행되었다. 충격이 컸던 대표적인 것만들어도 숱하게 많다. 우선 김일성은 68년 1월 21일 청와대를 기습,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고 한국을 공산화하려고 정규군 암살단 31명을 남파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북한은 1968년 10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울진·삼척지구에 무장공비 120명을 침투시켜 게릴라전을 펴, 양민들을 학살했다. 남파 무장군인들은  심지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2학년생 이승복 어린이(당시 10세)까지 무참히 살해했다.
한국군은 그해 12월 28일까지 약 2개월간 계속된 작전에서 공비 113명을 사살하고 7명을 생포, 침투한 120명을 모두 소탕했다. 이 작전에서 우리측도 군인·경찰과 일반인 등 20여명이 사망하는등 많은 희생을 치렀다. 북한은 또 1983년 10월 9일 미안마를 방문중이던 전두환 전대통령 일행을 암살하기 위해 폭발물을 터트려 17명을 사망케한데 이어 올림픽 개최를 무산시키기 위해 1987년 11월 29일 중동 한국근로자들이 탄 KAL858기를 공중폭파, 115명을 암살하기도 했다.
미국은 KAL기 폭파사건후 88년 이래 현재까지 해마다 북한을 테러국가로 지정해오고 있으며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2년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분류했다. 두 개 사건은 한반도 밖에서 일어났지만 결국 한국 대통령과 한국을 파괴하고 대남무력공격으로 한국을 공산화 하려는 북한의 폭력행사라는 점에서 휴전협정 위반범죄인 것이다.
북한이 1996년 9월 강릉 앞바다에서의 북한 상어급 잠수함과 무장공비들을 침투시켜 막대한 물적 인적 피해를 입혔고 98년에도 동해안에 잠수함을 침투시키는 등 북한의 대남무력도발행위는 그칠사이가 없었다. 1999년에는 북한 함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해 연평해전을 일으켰고 2002년 6월 29일에는 우리 해군함정을 기습공격해 한국장병 25명을 사상케했다.
북한은 이런 무력도발행위외에 휴전협정을 무력화 또는 파괴하려는 책동을 부단하게 벌였으나 휴전체제를 완전히 파괴하지는 못했다.
  북한은 유엔군사령부가 1991년 3월 25일 군사정전위원회 유엔측 수석대표를 한국군 장성으로 임명하자 군사정전위원회 본회담 개최를 거부해 왔다. 북한은 또 1993년 4월부터 1995년 2월사이에 북한·중국의 군사정전위원회 대표단과 체코·폴란드 중립국감독위원회 대표단을 철수시켰으며, 1995년 5월에는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 사무실을 폐쇄하고, 우리측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 감독위원의 공동경비구역내 북측지역 출입을 금지시켰다. 또한 1995년 6월에는 유엔군사령부 해체를 요구하였고 1996년 4월에는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의 유지,관리임무를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북한은 이와 함께 1994년 4월 휴전체제를 대신할 ‘새로운 평화보장체계’ 수립을 위한
미·북간 직접협상을 제의하고 그해 5월 24일 소위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를
설치, 간판을 내걸었다. 이어서 1995년 3월 미·북 군사접촉을 위한 미·북 장성급회담을 요구하고, 1996년 2월에는 미·북간 잠정협정 체결과 군사정전위원회를 대체할 미·북공동군사기구 구성협의를 제의했다. 이 때문에 98년 유고급 잠수정 동해침투사건은 유엔사와 북한군간 장성급회담에 상정돼 결말지어진 적도 있었다.
또한 북한은 1997년과 1998년 두차례 한반도 4자회담에서도 주한미군 철수와 미·북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했는데 북한의 이런 일련의 변칙적 행동은 휴전협정 파기와 주한미군 철수를 통해 대남적화목표를 달성하려는 음모에서 비릇된 것이다. 북한이 최근 북핵위기 해결을 다자틀 보다 미·북 직접협상구도로 끌고 가려는 것도 이런 의도와 연관된 것이다.

3. 한반도 평화와 휴전협정틀을 살리기 위한 노력들


한반도 평화와 휴전협정체제는 동서 데탕트와 동구권및 구소련 붕괴등 국제정치적 대변동때 마다 새로운 변화의 모습을 나타냈다. 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과 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및 한반도비핵화선언 채택등이 그런 변신이었다. 2000년 평양에서 6·15공동선언이 발표된것도 남북교류협력을 통한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적 통일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볼수 있다.
그러나 6·15공동선언 2항등 일부내용이 북한측 고려연방제통일방안을 수용한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6·15공동선언은 필요없고 남북기본합의서의 철저한 이행만으로도 지속적 남북교류협력과 한반도 긴장완화, 그리고 평화안정 및 평화적 통일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반론도 강력히 제게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의 7·4동동성명 불이행과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선언의 파기, 그리고 새로 채택한 6·15공동선언 내용등은  한반도평화 유지와 통일을 바라보는 남북한간 엄청난 시각차를 보여주고 있다. 북한의 목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남한을 공산화통일하려는 것이고 한국은 주한미군을 북한의 대남무력도발 억지를 위한 동맹세력으로 주둔시키려는 것이 현실적 목표다.
따라서 북한은 북핵문제등 근본적 한반도문제를 항상 한국을 배제한 가운데 미국과 직접 논의하려고 기도 해왔다. 94년 미북간의 제네바합의도 북한이 한국을 배제한 가운데 휴전협정 테두리박 밖에서 이득을 취한 것이었다. 북한이 휴전협정을 무력화, 파기하려고 꾸준히 음모 해온것도 이런 맥락에서 파악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지난 4월 베이징 3자회담에서 미국에 핵무기 보유를 내비치면서 김정일 체제보장약속과 불가침조약 체결을 요구하고 나온것도 한국을 빼고 휴전체제 밖에서 목표와 실리를 챙기려는 노림수에 다름 아니다.

4. 안정된 평화정착때까지 휴전협정 반드시 준수돼야(맺는말)

김영삼 대통령은 1995년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평화체제 구축 3원칙을  천명했다.
그것은 첫째,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에 따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관련된 모든 사안은 반드시 남북 당사자간에 합의,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남북한 합의사항의 이행과 신뢰구축을 바탕으로 공고한 평화체제가 구축되기 전까지는 현재의 휴전협정이 유지되고 준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로 그는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은 점진적이고 단계적이어야 하며, 관련 국가들의 협조와 적절한 역할이 필요함을 환기시켰다.
이런 목표달성을 위해서 북한은 자기들이 중립국 감독위원축출등 반신불수로 만든 지금의 휴전체제를 원상복구해야 한다. 북한은 군사정전협정 중립국감독위원회등 정전협정관리기구에 조속히 복귀하고 스위스 스웨덴, 폴란드 체코등 감독위원들이 휴전감시 역할을 온전히 하도록 허용해야 한다. 특히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과 한국전쟁의 성격을 감안할 때, 평화체제의 구축은 남북한이 주도적으로 추진하되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제도적인 보장이 병행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정당하고 합리적 방법이다.
북한핵과 대량살상무기, 그리고 생화학무기들은 한반도 휴전체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한시바삐 핵무기개발과 대량살상무기등을 폐기하며 북핵해결과 한반도 평화유지를 위해 한국과 일본을 포함하는 5자회담에 동의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휴전협정은 불완전하나마 반세기동안 한반도의 비전비화(非戰非和), 전쟁억지를 위해서 그런대로 필요한 기능과 역할을 해온 셈이다. 따라서 항구적 평화체제가 확립될 때까지 현재의 휴전협정은 남북 쌍방에서 반드시 준수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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