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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영무 (2004-07-24 13:19:30, Hit : 10363, Vote :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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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전협정 51주년과 김정일의 부전승 전략
                                                  呂永茂 남북전략연구소장


▼역사상 가장 긴 휴전속 北의 대남적화망상 변함 없어▼

27일은 북한의 남침 6.25 전쟁이 휴전된지 51주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는 세계 역사상 비전비화(非戰非和)의 가장 긴 휴전체제 아래서 살고 있다. 6·25전쟁은 결국 3년간 동족상잔의 깊은 상처와 민족분단의 아픔만을 남기고 38선 대신 155마일 휴전선에서 정전된 것이다. 올해는 또 김일성의 남침전쟁 발발 54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한국은 그때 신생독립국으로서 나라를 방위할 만한 국방력을 갖추지 못했을뿐 아니라 설마 북한이 동족상잔의 남침전쟁을 벌일까 하고 방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평화를 선전하던 북한은 1945년 남북분단과 함께 비밀리에 소련의 도움으로 꾸준히 남침무력증강을 해왔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춘 북한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38선 전전선에 걸쳐 탱크로 중무장한 대병력을 이끌고 전면적 기습남침전쟁을 감행하게 된 것이다. 김일성은 1949년 6월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킨데 이어 한국과 대만을 극동방어선(일명 애치슨 라인)에서 제외시키자 한국을 무력으로 공산화하기 위해 소련 스탈린의 승인을 받아 남침을 도발한 것이다.

유엔은 촌각을 다투어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 북한의 공격을 '평화를 파괴하는 침략행위'로 규정하고 '원상복구'를 요구하였으나 북한은 이에 불응, 탱크를 앞세우고 파죽지세로 달려 사흘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한달만에 남한의 4분의3을 점령했다. 초전에서 북한이 철수하라는 유엔 안보리결의를 무시하자 미·영·호주 등 유엔회원국 21개국(의료 지원국 5개국 포함)이 UN군을 창설, 한국을 적극 지원했다.

전쟁초기 한국군보다 4배가 넘는 월등한 화력과 병력을 가진 북한 인민군은 한달여만에 한국의 4분의3을 점령했으나 9월15일 한국군과 UN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인민군은 패주를 거듭, 압록강까지 후퇴하였다. 이때 한국군과 유엔군이 침략군을 물리침으로써 한국의 통일이 눈앞에 닥아온 듯 한 흥분마저 감돌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0월16일 당시 중공군이 10만여명 대 병력으로 한국전에 개입하자 통일은 일순간 허공으로 날아 가버리고 오히려 3년간의 긴 전쟁의 고통은 더욱 가혹하게 닥아왔다.  중공군이 북한군을 지원하자 전세가 역전되었으며 38선 상에서 적과 아군사이 일진일퇴, 대치하다가 1953년 7월 27일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과 침략자이며 전범인 김일성, 팽덕회 중공지원군 사령관 사이 휴전협정이 체결된 것이다. 인해전술을 구사한 중공군의 개입으로 대한민국은 통일을 눈앞에 두고도 원통하게 휴전협정을 강요받게 된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주도 아래 통일될 때 까지 전쟁을 계속할 것을 요구하면서 정전에 반대하면서 휴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한국이 서명당사국에서는 빠졌지만 법적으로나 실질적으로 한국이 휴전협정 당사국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전쟁중 한국군이 일정한 책임지역을 맡아 적군과 전투를 벌였을뿐 아니라 휴전협정 체결후에도 반세기동안 휴전협정체제를 지탱하기 위해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왔기 때문이다.
  
대남적화 전략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독재자 김일성의 무모한 남침전쟁이 680여만명의 사상자(군인 230만--한국군과 유엔군 48만여명, 공산군측 150-200여만명--, 민간인 450만여명)를 내고 고아 발생 370여만명, 공장(900여개), 주택(60만여동), 산업시설등 전국토를 초토화 하는등 민족의 산과 들, 도시들을 온통 피로 물들였다. 한국을 지원하다가 전사한 미군도 3만7천여명에 달하며 부상자는 10만여명을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김일성은 자신이 도발한 동족상잔으로 1천만의 이산가족을 발생시키고 8만여명의 공무원과 지도급 인사들을 납북하는등 용서받지 못할 반민족,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다. 오늘의 386세대는 김일성의 6·25 남침전쟁과 미국 및 유엔군의 대규모 희생적 지원, 그리고 중공군 개입으로 통일이 좌절된 안타까운 역사적 배경등을 똑똑히 알아야 할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김정일은 독재자 아버지의 대남적화통일 유훈을 계승, ‘민족공조’와 젊은세대의 반미감정을 방패삼아 인터넷등 집요한 대남심리전을 통해 부전승(不戰勝)으로 적화전략 목표를 달성하려고 피눈이 돼 돌아가고 있다.

▼북한의 무수한 협정위반과 협정 파기행위들▼

  휴전협정에도 불구하고 북한측의 노골적인 위반행위로 말미암아 일촉즉발의 전쟁재발 위험선까지 도달한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오늘 까지 한반도에서 전면전의 재발없이 불안정 하나마 휴전이 그런대로 지켜진 것은 정전협정을 중심으로 남북간의 세력균형과 한미동맹,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협정준수 노력 덕택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휴전협정위반은 주로 북한에 의한 항공기 납치와 공중폭파, 잠수함과 간첩남파등 무력도발과 핵무기와 대량살상무기 개발등 다양한 형태로 자행되었다. 충격이 컸던 대표적인 것만들어도 숱하게 많다.  68년 1월 21일 청와대를 기습,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고 한국을 공산화하려고 정규군 암살단 31명을 남파한 1·21사태와 같은해 10월의 울진·삼척지구에 무장공비 남파 게릴라전과 양민학살등을 들수 있다.

1987년 11월 29일 일어난 김정일의 KAL858기 공중폭파와 115명의 무고한 승객 집단학살은 천인공로할 반인륜적 테러리즘이었다. 이 집단학살은 88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한것이었다.  미국이 이 사건후 88년 이래 현재까지 해마다 북한을 테러국가로 지정해오고 있는 것은 김정일의 자업자득이다. 북한은 51년간 무력 도발 2800여 건을 비롯 총 43만 건의 휴전협정을 위반했다.
  
1999년에는 북한 함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해 연평해전을 도발했고 2002년 6월 29일에는 우리 해군함정을 기습 공격해 한국장병 25명을 사상케했다. 북한은 지난 7월 14일과 18일 두차례 NLL을 침범하는등 휴전협정체제를 파괴함으로써 우리내부를 벌집 쑤셔놓은 듯 갈등을 조장하기도 했다. 북한은 이런 무력도발행위외에 휴전협정을 무력화 또는 파괴하려는 책동을 부단하게 벌였으나 휴전체제를 완전히 파괴하지는 못했다.


북한은 쌀과 비료, 생필품과 의약품등은 ‘민족공조’를 빙자, 남한에서 지원받되 본격적 군사문제는 미국과의 직접협상으로 해결한다는 전략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북한의 이런 작태는 휴전협정 파기와 주한미군 철수를 통해 대남적화목표를 달성하려는 음모에서 비릇된 것이다. 북한이 6자회담중에도 북핵위기 해결을 다자틀 보다 미·북 직접협상구도로 끌고 가려는 것도 이런 흉계에서 비릇된 것이다.

남과 북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 현 정전상태를 남북사이의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며 이러한 평화상태가 이룩될때까기 현 군사정전협정을 준수한다"고 서약했다. 그럼에도 북한은 갖은 계략과 흉계를 동원, 휴전협정의 무력화를 기도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휴전협정은 지금 반신불수 상태에 빠졌다.

▼자유체제 보장의 궁극적 안전판은 강력한 국방력뿐▼

북한핵과 대량살상무기, 그리고 생화학무기들은 한반도 휴전체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과 미국의 인내와 노력으로 지금의 휴전협정은 불완전하나마 반세기동안 한반도의 비전비화(非戰非和), 전쟁억지를 위해서 그런대로 필요한 기능과 역할을 해온 셈이다.  

휴전협정은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국제법적 효력을 지닌 유일한 ‘안전장치’다. 휴전협정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군사적 신뢰구축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남북간에는 아직 이런 신뢰가 축적돼 있지 않다. 그 이유는 북한의 핵무기개발등 군비증강과 호전성, 先軍政治 때문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일고 있는 북한과의 평화협정 체결 문제도 현재 남북한 간 군사적 신뢰가 구축되지 않은 조건에서는 의미가 없다.  평화협정을 체결했다고 해도 상호 신뢰와 협정 준수 의지가 없는한 협정은 군사적 무력 앞에 한낱 종잇장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협정으로도 전쟁을 억제할 수 없고 강력한 무력만이 전쟁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만약 김정일의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우리의 자유와 안전을 보장해주는 궁극적 안전판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강력한 국방력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지금의 휴전협정을 변경할 경우 자칫 평화는 커녕 한반도에 통제 불능의 무력폭풍을 몰고올 위험이 있기 때문에 평화협정 체결은 신중해야 할것이다.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북한이 핵무기등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전제조건이 충족되기 까지는‘불완전한 평화’라도 유지하기 위해서 휴전협정체제를 고수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51년간의 긴 휴전기간 한반도에서 총성이 없다고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오늘의 철부지 전후 세대들은 활발한 남북 교류와 협력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의 대남 적화혁명 전략목표는 변함없이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김정일은 최근에는 인터넷에 심리전 선전글까지 남발하면서 우리의 안방까지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그들은 남북교류를 틈타 오히려 과거보다 더욱 교묘하고 복잡한 수단과 방법을 총 동원, 대남적화목표 달성을 위해 줄기차게 치닫고 있음을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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