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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영무 (2004-08-28 16:09:44, Hit : 10210, Vote : 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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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은 남의 역사 강탈하는 패권주의 오만 당장 버려야(1)
                                                                  남북전략연구소장

한국과 중국은 한반도와 육지와 바다로 맞닿아 있다. 5천년동안 두나라 사이는 정치 경제 사화 문화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한국은 독특한 문화를 가지면서도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온 것은 사실이다. 임진왜란때는 이여송 장군을 보내 일본침략군을 격퇴하기 위해 동맹군으로 싸우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인의 뇌리에는 중국은 언제나 귀찮고 나쁜 이웃으로 기억되고 있다. 중국 중원에서 일어난 여러 왕조들이 쉴새없이 평화로운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무한정 약탈했기 때문이다. 수나라 당나라에 이어 몽고와 청나라들이 잇따라 한반도를 침략하고 약탈해갔다.

13세기 몽고군은 6차례나 침략하면서 가는 곳마다 닥치는 대로 살륙을 자행하였고 학살을 면한 민간인들은 굶어 죽는 일이 허다하였다. 몽고군이 지나간 자리는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청(淸)나라의 조선에 대한 침입으로 일어난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병자호란 역시 수많은 인명피해와 재산약탈을 가져왔다. 청태종은 조선 제16대 왕인 인조에게 1637년 침략자인 그들에게 한강 연안의 나루 삼전도(三田渡)에서 굴욕적인 항복을 강요하기도 했다.

구한말 갑신정변후 청나라 위안스카이(袁世凱-당시 24세)가 12년 동안 청(淸)군을 이끌고  안하무인격 횡포를 부리면서 전국토를 구석구석 뒤져 금은보화와 인삼등 탐나는 특산품들을 닥치는대로 약탈해갔다.‘주차조선총리교섭통상사의(駐箚朝鮮總理交涉通商事宜)’란 직함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조정을 쥐락펴락했고 감히 고종의 폐위까지 주장했던 방자한 침략군 사령관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냉전시대 중국은 김일성의 남침도발을 방조했고 두 번째로 한국군과 유엔군의 남북통일을 바로 코앞에서 훼방했다. 1950년 10월 15일부터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김일성 역도의 침략전을 지원하기 위해서 이른바 지원군이란 미명아래 6·25남침전쟁을 도와 준 것이다.

중공군이 한국통일을 놓치게 했기 때문에 한반도의 남북분단은 반세기이상 고착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이로인해 한국인들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수많은 대남 전복무력도발과 테러리즘으로 모진 고통을 당해오고 있다. 이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수 없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미소동서 냉전종식후의 변화를 계기로 한국과 중국은 1992년 8월 24일 수교를 하고 구원을 잊기로 약속했다. 두나라 사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교류협력폭은 나날이 증가,  2003년말 교역량은 570억달러에 이르게 되었다. 사람들의 왕래도 증가해 현재는 연간 수백만명이 오가고 있다. 한국은 베이징 아시안 경기진행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권 획득도 도와주었다.

중국이 오늘날 세계 경제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것도 박정희의 경제개발 모델을 벤치마킹한 등소평의 개혁개방정책 덕택이며 그후 부분적으로는 한국이 대중국 투자와 교역에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한국민들은 중국의 이런 승승장구 경제적 부흥을 이웃으로서 당연히 기뻐하고 축하할 일이었다. 중국은 78년부터 4반세기동안 개혁개방정책으로 2003년 말 현재 국가총생산(GDP)은 1조4천억달러로 세계 7위로 뛰어올랐다.

2020년내 중국은 경제규모 세계 2, 3위를 바라보게 되었다. 실로 상전벽해의 대변혁이다. 근대 중국은 1840년대의 아편전쟁에 뒤이은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과의 불평등조약으로 반식민지상태로 몰락했고 일본은 1930년초 만주침략으로 동북3성을 빼앗은데 이어 1937년 7월 베이징 상하이 난징 텐진등 주요도시를 모조리 함락, 일본은 사실상 중국을 반식민지 상태로 지배했다. 당시 한국도 일제 식민지아래서 신음하느라 중국인들과 한국인들은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면서 상호 협력해오다 일제멸망으로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

중국은 한국보다 개혁개방면에서 20여년간 지각했다. 그러나 등소평의 지도아래 전국토를 쑥대밭으로 망쳐놓은 모택동의 시대착오적 문혁(文革)과 홍위병난동을 단죄, 반전시키고 중국을 오늘의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려 세운것이다.  중국이 19세기이래 반식민지와 중일전쟁의 참화를 거쳐 천신만고 끝에 이처럼 성장 발전 한 것은 퍽 다행한 일이다. 이런 발전은 중국을 위해서나 이웃 한국을 위해서 참으로 잘된 일이고 축하할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문제는 최근의 중국이 이런 급속한 경제성장과 발전에 도취되어 이웃 국가들에게 오만무례를 부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에 대해서 매사에 고압적으로 나오면서 자기들이 19-20세기 서방제국주의에 당했던 패권주의 강권주의적 행패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중국 중앙정부 차원의 체계적이며 조직적인 고구려사 왜곡이다. 이것은 단순한 역사왜곡이 아니라 21세기 대명천지 백주에 전세계 만인주시리에 이웃나라 역사를 송두리째 강탈해가는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 이다.

이것은 덩치큰 중국이 몸집 작은 이웃 한국쯤은 무시하고 깔아뭉게도 아무 말 않겠지 하는 오만방자함의 극치이다. 중국이 이번에 근본적인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계속 이리저리 꼼수와 속임수로 어물쩍 넘어가려다 큰코 다칠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깨달아야 한다.

현실성이 희박한 통일후 ‘대(大)대한민국의 만주진출’을 미리 막는라 벌이는 고구려사 왜곡은 오히려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 있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라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중국의 오만와 패권주의는 과거 중국으로부터 침략을 받은 모든 아시아 주변국가들의 단결을 자극, 대국주의를 경계하고 포위하도록 만든다는 것쯤은 알아야 할 것이다.
<오만과 욕심은 죄(원한)를 낳고 죄는 마지막에 사망(붕괴와 소멸)을 낳는다>는 성경말에서 중국 지도자들은 반드시 생명의 교훈을 얻어야 할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백주에 남의 나라역사를 강탈해가는 石器時代的 정글 논리와 행패를 거두고 한시바삐 고구려사를 원상회복 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중국은

북핵문제와 탈북자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고 한중교역액이 연간 570억달러에 달하는등 한국수출의 대중국의존도가 높다는 것도 한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이 이런 강점을 남의 나라 역사강탈을 정당화 할수 있는 합리적 근거로 악용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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