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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영무 (2016-01-24 17:11:05, Hit : 3698, Vote :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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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간안내] 소띠 엄마의 워낭소리
2016.1.5 여영무 박사 지음 
도서출판 문예출판사 발행/ 정가 11,7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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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1부

소띠 엄마의 워낭소리
안태 고향 심심산골 신촌(新村)
어머니가 팔뚝에 그려 준 초승달 무늬
태곳적 신비 간직한 신촌의 산과 들로
여섯 살 어린 소년이 소를 먹일 때
대구 수창(壽昌)국민학교 유학
일제강점기 말 전환기 신촌에서 대구로 이주(移住)
아버지는 만주(滿洲)로, 어머니 혼자 식솔 거느려
나의 전학증(轉學證) 보고 실망해 울던 어머니
‘대구 10·1 폭동’ 때 “대세 따르라”던 어머니 말씀
대구상고(大邱商高) 합격 때 기뻐하던 어머니
6·25전쟁 때 포위된 대구 시민들의 피란 소동
수창동 신축 한옥 기와집 이사 후 기뻐한 어머니
‘昌成’ 해체 후 서울로 올라오신 어머니
어머니와 신촌 방문하던 날 까치 소리 요란해
치매 고비로 어머니 건강 쇠잔해져
노년의 고독한 생활에 지친 어머니
한 많은 인생살이 뒤로하고 하늘나라로
80년 전 어머니 꽃가마 타고 시집오던 산길 걸어 보니

2부

어머니 사랑으로 세상을 평화롭게
젊은 세대의 어머니 사랑과 효심
어머니 사랑, 가족 사랑이 행복의 근원

[예스24 제공]

 

<소띠엄마의 워낭소리>

머리말
 

세상에서 어머니만큼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친근한 말은 없다.

우리는 젊으나 늙으나 어머니하고 부르는 순간 이세상 모든 시름이 사라지고 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고 싶은 동심으로 돌아간다. 수천번 수만번 불러도 물리지 않는 그 고귀하고 위대한 어머니’. 솜 이불 같은 따뜻함과 포근함, 그리고 평화로움, 온몸을 감싸안는 포용력과 치유력은 그 어디에 비할 수 있겠는가.

누구나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으앙하고 태어나서 자라고 죽을 때까지 언제나 어머니란 호칭과 그 자애로운 모습을 가슴속에 품고 살아간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어도 자식들의 가슴속에는 어머니가 생시처럼 항상 머물러 계신다. 돌아가신 후에도 어머니와 자식들은 무선으로 연결된 것처럼 늘 정신적으로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13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도저히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생로병사는 만고불변인 자연과 신의 섭리다. 누구도 이를 거스를 수 없다. 어머니가 떠나시고 3년이 지나서야 상실감으로 인한 마음의 깊은 상처가 서서히 아물어 갔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꿈속에서 어머니를 뵙곤 한다. 깨어 있을 때도 문득문득 생시의 말씀과 표정이 떠오르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울컥울컥 북받쳐 눈물을 흘리곤 한다.

1913년생 소띠인 어머니는 평생토록 남편과 자식들만을 위해 희생하셨다. 이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상실감과 허무감에 사로잡혔다. 왕후장상과 고관대작은 선정으로 백성을 보듬었든, 학정으로 백성을 괴롭혔든 이 세상에 살다 간 흔적이라도 남는다. 하지만 누구의 아내, 누구의 어머니로만 불리며 평생 희생만 하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는 무명이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어머니와 나는 신의 섭리에 따라 억겁의 세월전 인연을 맺은 끝에 부모 자식으로 만나 하늘 아래 지구란 행성에서 70년을 함께했다.

어느 순간 머리에 섬광처럼 떠오른 생각은 모자의 인연으로 함께한 어머니의 인고(忍苦)의 궤적을 글로 형상화해 보통 사람의 위대한 어머니로 부활하시도록 해 드려야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소띠 엄마의 워낭소리>>를 쓰게 된 근본 동기다.

입체적 서술을 위해서 내가 팔십 평생 겪은 체험적 현대사를 씨줄로 삼고 어머니의 일생을 날줄로 삼는 형식을 취했다. 서술에 포함된 나의 체험적 현대사 기간은 1930년대 전반 일제 무단통치의 억압 시대부터 2015년 상반기까지, 옹근 81년간이다. 이 기간은 일제강점기 35년과 1945년 광복, 그리고 건국, 3년간의 동족상잔인 6·25전쟁과 휴전, 전후 재건 기간, 5·16군사정변과 18년간의 박정희 통치 기간, 이어서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민주화 개헌과 네 차례의 수평적 정권 교체를 통해 민주화가 정착된 기간이다.

박정희 장군은 군사 쿠데타로 집권했지만 그는 한강의 기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에게 할 수 있다라는 캔두(CAN DO) 정신을 불어넣었다. ‘캔두 정신은 우리 민족이 5000년의 가난에서 벗어나 잘사는 나라로 도약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박정희의 지도력은 국민을 한 덩어리로 뭉치게 해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다. ‘캔두 정신은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운동과 함께 21세기 오늘날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전 세계로 확산돼 여러 나라에서 빈곤 탈출과 경제성장을 위한 전략으로 채택되고 있다. ‘캔두 정신은 그의 최대 라이벌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격찬할 만큼 온 국민의 공감을 사고 있다.

나는 소띠 엄마에서 직접 체험한 일제 무단통치 시대와 해방공간 3년간의 좌우 갈등, 6·25전쟁의 참혹상, 그리고 산업화를 통한 경제성장 기간과 민주화 시대의 투쟁 과정 등의 경험과 스토리를 동시대인과 그 후의 청소년 세대와 함께 나누고자 갖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 점에서 2015년 하반기 중고교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결정과 현대사 기술을 둘러싸고 불붙은 보수와 진보 세력 사이의 격렬한 논쟁에서 소띠 엄마가 일정 부분 참고가 되리라 생각한다.

어머니 하면 바늘 가는 데 실 가듯 꼭 따라붙는 것이 부모님을 공경하고 형제끼리 우애하라는 효제(孝悌) 사상이다. 요즘 세상은 권력 기관의 상층부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탐욕스럽고 살벌하기가 짝이 없다. 살부모(殺父母)와 살자녀(殺子女)의 패륜 범죄가 예삿일이 되는가 하면 하루 평균 40건의 자살 사건으로 사회공동체와 가족공동체가 황폐화되고 있다. 이런 비극적인 패륜 사건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예방하기 위해 서술의 상당 부분을 효제 정신 부활을 위해 할애했다. 효제정신의 부활은 청소년 인성교육과 도덕성 함양을 위한 자양분이 될 수 있다. 후반부에서 조선시대 거유 이퇴계, 이율곡 선생과 아인슈타인 등 국내외 현인들의 어머니가 보여 준 한결같은 자식 사랑과 열열한 교육열, 그리고 서울의 한 대학교 학생들의 어머니 사랑을 실증적으로 열거한 것도 이 때문이다.

35년에 이르는 잔혹한 일제 무단 통치와 김일성의 6·25전쟁 도발은 평소 우리 민족이 유비무환과 자립 자강에 얼마나 게을렀던가를 잘 보여 주었다. 오늘날 수백만의 중동 시리아 난민이 유럽으로 물밀듯 몰려가는 것처럼 일제 강점 시절 수백만의 우리 민족이 남부여대하고 만주로 이주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도 일제강점기 고국에 처자식들을 남겨 놓고 이주해 만주 벌판을 고독하게 떠돌아야만 했다.

<<소띠 엄마의 워낭소리>>는 나 개인의 사모곡이자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어머니 사랑과 효제 사상의 부활을 일깨우려고 애썼다. 어머니의 모성애는 자유, 평화, 자애와 포용, 관용, 치유를 상징한다. 어머니는 핏줄과 사랑으로 맺어진 가족공동체의 중심이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라는 성경 말씀을 실천하고, 공자가 말한 대동사회(大同社會)’를 이루기 위해 솔선수범하는 사람이다. 포용과 관용, 그리고 자애로움이라는 모성애를 온통 집단 살육으로 얼룩진 지구촌 곳곳의 야수적 갈등과 패륜을 척결하고 세계 공동체의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근본과 원동력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소띠 엄마의 워낭소리>>의 집필을 위해 백운동 신촌까지 세 차례나 동행하고 일제강점기의 신촌 생활과 가족사를 자세하게 알려 준 사촌 영하(永夏) 형에게 감사드린다. 효제 사상과 공맹학을 일깨워 준 김진하(金鎭河) 담산문화원(談山文化院) 이사장과 바쁜 시간을 할애해 교열을 맡아 준 여규병 동아일보 어문연구팀 선임기자에게 감사드린다.

어머니에 관한 갖가지 도서와 많은 자료를 구해 주고 졸저의 출판까지 맡아 준 문예출판사 전병석(田炳晳) 사장과 편집진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1611

김포에서 여영무

 

<동아일보 보도내용>

김지영기자
입력 2016-01-13 03:00:00

원로 언론인 여영무씨 에세이 ‘소띠 엄마의 워낭소리’ 출간


여영무 남북전략연구소장은 새 저서에 대해 “개인의 사모곡이자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어머니의 사랑을 일깨우고자 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DB
 

“세상에서 ‘어머니’만큼 부드럽고 친근한 말은 없습니다.”

최근 ‘소띠 엄마의 워낭 소리’(문예출판사·사진)를 출간한 원로 언론인 여영무 남북전략연구소장(81)의 어머니에 대한 회고다. 1913년생 소띠인 그의 어머니는 평생 누구의 아내, 누구의 어머니로만 불리면서 희생만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 어머니를 떠올리면 아들은 솜이불 같은 따뜻함과 포근함, 평화로움을 느낀다.

이 책은 여 소장이 어머니를 회상하면서 쓴 에세이다. 그는 “어머니가 겪은 인고의 궤적을 글로 형상화해 보통 사람의 위대한 어머니로 부활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 책을 썼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그렇지만 개인적 추억에만 머물지 않았다. 어머니의 일생을 날줄로 삼으면서 저자가 체험한 한국 현대사를 씨줄로 교차시켰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 속에 1930년대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6·25전쟁,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오늘날까지의 현대사가 담겼다. 

장남인 저자를 깊이 사랑해 젖을 일찍 떼지 않았던 어머니다. 교육열도 뜨거웠다. 일제 말기 대구 수창초등학교 4학년이던 그는 공부가 하기 싫어 학교에 피란 간다는 핑계를 대고 전학증(퇴학과 같은 의미)을 떼어왔다. 그때 어머니는 툇마루에서 울었다. 그러던 아들이 대구상중 합격 소식을 전하자 툇마루에 앉아 있던 어머니의 얼굴은 환하게 밝아졌다. 저자는 “같은 툇마루에서 울고 웃던 어머니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고 돌아봤다.

모진 고생 속에서 자식들을 키우면서도 늘 강인해 보이던 어머니도 노년엔 쇠약해졌다. 자식에게 “인제 가면 언제 또 올래?” 하면서 아이처럼 매달리고 당부하는 모습에선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흙수저 논란, 광기 어린 이슬람국가(IS)의 테러 등으로 혼돈한 세상을 정화하고 인간이 근본으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깊이 고민했다는 저자는 “‘어머니의 사랑’이 답”이라고 말했다. 

“가정 화목과 인성교육이 무엇보다 필요하며 이를 위해선 모성애 같은 깊고 넓은 사랑이 바탕이 돼야 합니다. 그 사랑을 닮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거친 세상을 다듬는 근간이 될 것입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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